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속한 곳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꽤 성실하게 수행하며
그것을 ‘내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직장에서는 직원이고, 집에서는 부모이거나 배우자이고,
누군가에게는 딸이고 친구다.
역할이 많아질수록 하루는 바빠지는데 ...
이상하게도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최인훈의 《광장》을 다시 펼쳐보면...
오래된 분단소설이면서도 바로 이 질문이 꽤 가까이 다가온다.
《광장》은 1960년 발표된 작품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를 둔 지식인으로
남한과 북한을 모두 경험한다.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그는 어느 한쪽에서도 자신이 꿈꾸는 삶의 공간을 발견하지 못한다.
전쟁이 끝난 뒤 포로가 된 그는
남과 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 앞에서 중립국을 택한다.
이 작품은 남북의 체제를 단순히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렸다고 정리하기보다,
개인이 이념과 체제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광장》을 이명준이 겪는 분단 현실을 통해
남북 분단의 비극을 성찰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설명한다.
작품의 제목인 ‘광장’을 생각해보면 더 흥미롭다.
광장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공간이다.
반대로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도 침범받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내밀한 공간도 필요하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어 한다.
이 두 욕구가 언제나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고전을 읽는 방식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도 여기다.
고전을 과거의 정답처럼 받아들이기보다
‘이 책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묻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광장》을 그런 식으로 읽으면 분단과 이념이라는 역사적 배경 너머로 질문 하나가 남는다.
나는 내가 속한 곳에서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직장에 가져와 보면 꽤 현실적이다.
회사에는 회사의 목표가 있고 조직에는 규칙이 있다.
월급을 받는 이상 내 마음대로만 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회사의 평가가 내 인생의 평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승진하면 내가 괜찮은 사람 같고,
인정받지 못하면 내 능력 전체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에서도 비슷하다.
‘좋은 엄마라면 이래야 한다’, ‘좋은 배우자라면 참아야 한다’,
‘자식이라면 부모에게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지혜도 있지만,
때로는 개인의 욕망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조직과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 살 수는 없다.
《광장》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은...
자유가 단순히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 상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내가 선택한 것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상태도 자유에 가깝지 않을까.
돈 문제도 그렇다.
우리는 흔히 돈이 많아지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돈은 선택지를 늘려준다.
싫은 일을 그만둘 가능성도, 시간을 살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계속 미루고 있다면
‘얼마가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질문도 함께 해볼 필요가 있다.
돈은 자유를 위한 수단인데 ...
어느 순간 돈 자체가 또 하나의 광장이 되어 우리를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뉴스나 사회 문제를 볼 때도 《광장》은 좋은 경계심을 준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어느 편인지 묻는다.
찬성이냐 반대냐, 진보냐 보수냐, 우리 편이냐 상대편이냐.
물론 선택해야 할 순간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면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의 사정과 질문이 사라진다.
다른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광장》을 읽으며 거창한 정치적 결론보다
아주 개인적인 질문 하나를 가져가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직장도, 가족도, 돈도, 인간관계도 모두 버리고
나만의 삶을 찾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내가 속한 광장을 떠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나의 작은 공간을 지키는 방법을 찾자는 쪽에 가깝다.
하루 30분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목표가 아니라 ...
내가 원하는 목표를 하나 정하고,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다들 이렇게 하니까’
대신 ‘나는 왜 이것을 선택하는가’를 한번 묻는 것이다.
내가 속한 곳과 내가 원하는 삶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다.
조직과 가족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되
가끔은 역할을 모두 내려놓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는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내 선택의 이유를 잃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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