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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움직이지 않았는데 지쳐버린 이상한 하루에 대하여

by 메꿔지지 않는 공부에 대한 욕구!!! 2026.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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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50분.
회사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켠다.

메일을 확인하고, 메신저에 답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대충 머릿속에 정리한다.
그리고 앉는다.

10시에도 앉아 있고,
11시에도 앉아 있고,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도 다시 앉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의자 위에서 보낸다.
그렇다고 그 긴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다.

잠깐 뉴스를 보고,
택배가 어디쯤 왔나 확인하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어제 봐둔 옷을 다시 보고,
카톡도 한번 확인하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던 연예인 이야기를 읽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다.

‘아, 나 뭐 하고 있었지?’
다시 엑셀을 연다.
그런데 이상하다.

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피곤하다.

회사라는 곳에는 왜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을까
오후 3시.
슬슬 지루해진다.
탕비실에 가본다.
과자가 있다.
초콜릿도 있고, 믹스커피도 있고, 누군가 사다 놓은 젤리도 있다.

조금 더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컵라면과 음료수까지 종류별로 준비돼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 복지다.
“직원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분명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묘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심심하면 과자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라면을 먹는다.
점심을 먹은 지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배가 고픈 것도 아니다.
그냥 입이 심심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배가 고파서 먹는 것보다
지루해서 먹는 시간이 꽤 많다.

손은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고,
입은 과자를 씹고 있고,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다.

인간의 몸은 이렇게 살도록 만들어진 걸까?

그런데 돈도 같이 사라진다
먹는 것만이 아니다.
업무가 지루해질수록 인터넷 쇼핑은 이상하게 재미있어진다.
아까까지 엑셀 숫자는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쇼핑몰 가격 비교는 놀라울 정도로 집중이 잘된다.
29,900원.
무료배송.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
‘이 정도는 괜찮잖아?’
결제한다.
며칠 뒤 택배가 도착하면 잠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옷장에는 비슷한 옷이 이미 있다.

건강은 조금씩 나빠지고,
통장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집에는 물건이 조금씩 늘어난다.

도대체 나는 회사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
하루 종일 앉아 있었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드디어 퇴근.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오늘 산을 오른 것도 아니다.
무거운 짐을 나른 것도 아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어깨는 굳어 있고 목은 앞으로 빠져 있다.
허리는 뻐근하고 엉덩이와 고관절 주변은 답답하다.
몸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몸이 더 무겁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운동 못 하겠다.’

집에 도착한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계란.
두부.
야채.
이걸 보는 순간 갑자기 더 피곤해진다.
배달앱을 연다.
치킨.
떡볶이.
마라탕.
족발.
햄버거.
사진만 봐도 행복하다.
주문 완료.
오늘 하루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하루는 침대 위에서 끝난다
배달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
설거지도 하기 싫다.
소파에 눕는다.
휴대폰을 든다.

“10분만 봐야지.”
쇼츠 하나.
또 하나.
고양이가 나온다.
연예인이 나온다.
주식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피부 관리 영상이 나온다.
누군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영어 공부까지 한다.
나는 배달음식 용기를 옆에 두고 누워서 그 사람의 ‘성공하는 아침 루틴’을 보고 있다.
조금 웃기다.
시간을 보니 11시 48분.
이제 자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휴대폰을 내려놓기가 싫다.
한 개만 더.
결국 새벽 1시.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린다.
“아…… 피곤해.”
겨우 일어난다.
아침은 당연히 못 먹는다.
출근한다.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는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는 왜 이러는 걸까?


처음에는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의지가 약해서 운동을 못 하고,
절제력이 부족해서 과자를 먹고,
자기 관리가 안 돼서 늦게 자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 종일 ‘작은 보상’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루하니까 과자를 먹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쇼핑을 하고,
피곤하니까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머리를 비우고 싶으니까 쇼츠를 본다.
그 순간에는 모두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문제는 그 보상의 유효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과자를 먹는 즐거움은 몇 분.
택배를 뜯는 즐거움도 몇 분.

배달음식의 만족감도 잠시.
쇼츠 하나의 재미는 몇십 초.
그래서 우리는 또 다음 자극을 찾는다.
조금 더 맛있는 것.
조금 더 재미있는 것.
조금 더 새로운 것.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데 몸이 원하는 보상은 어쩌면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창밖을 보며 5분 걷는 것.
굳어 있던 어깨를 천천히 돌리는 것.
점심을 먹고 햇빛을 받으며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
배가 고프지 않다면 과자를 먹지 않는 것.
퇴근 후 집까지 한 정거장 정도 걸어보는 것.

집에 도착해서 휴대폰부터 잡는 대신 샤워를 하는 것.
거창하지 않다.

운동복을 사고 헬스장에 등록하고 닭가슴살 30팩을 주문할 필요도 없다.
생활의 방향을 아주 조금 바꾸는 것이다.
회사에서 50분 앉아 있었다면 3분이라도 일어나 보자.
엘리베이터 대신 한두 층 정도는 계단을 이용해보자.
오후 3시에 과자가 당긴다면 스스로 한번 물어보자.
“나 지금 정말 배고픈가?”
쇼핑몰을 열었다면 결제하기 전에 하루만 장바구니에 넣어두자.
퇴근해서 배달앱을 열고 싶다면 냉장고에 있는 것부터 하나 먹어보자.
그리고 잠들기 30분 전에는 휴대폰을 조금 멀리 두자.
이 정도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은 의외로 작은 것에서 무너지고, 작은 것에서 다시 시작된다
우리는 건강을 바꾸려면 엄청난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헬스장에 가야 하고,
살을 10kg 빼야 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하고,
밀가루와 설탕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작하기도 전에 지친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를 망가뜨린 것도 사실 엄청난 사건들이 아니었다.
과자 한 봉지.
쇼츠 10분.
배달음식 한 끼.
‘오늘만 운동 쉬자.’
‘오늘만 늦게 자자.’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생활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10분 걷기.
물 한 잔.
스쿼트 10개.
배달음식 대신 간단한 집밥 한 끼.
휴대폰을 내려놓고 30분 일찍 잠들기.
이런 사소한 선택들도 쌓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나는 정말 너무 피곤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너무 움직이지 않아서 점점 더 피곤해지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내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작은 틈인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인생을 바꿀 필요는 없다.
다만 회사에서 오후 3시가 되었을 때,
습관처럼 과자 봉지를 뜯기 전에 한번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자.
그리고 5분만 걸어보자.
우리의 몸은 어쩌면
과자보다 그 5분을 훨씬 오래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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